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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염불기도 /대행스님

[대행스님] 돼지가 원하면 돼지가 되어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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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자:

 

부처님한테 착을 두면 부처에 빠지고
열반에 착을 두면 열반에 빠진다고 합니다.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확철대오를 바라게 되는데
이게 다 언어놀음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자유인의 경계는 어떤 것인지요.

 

 

대행스님:

 

스스로 실천해 보아야 알고
맛을 보아야 알듯이 댁에서 겪어 보아야 압니다.


굳이 이야기하자면 사람이 애를 낳기는 했는데
제 손으로 할 수 있는 게 없단 말입니다.


그래서 어른이 될 때까지 먹여주고 거둬주고 해야하는데
그렇듯이 성품을 볼 때까지 수행을 해야합니다.
 

정신이 어른이 되어야 하지요.
그러나 견성했다 해서 다는 아닙니다.

 
또다시 얼마를 수행해야 할지 모르지요.
일체를 놓고 들어가 견성했듯이 또 계속 놓고가야 합니다.

그래서 둘 아닌 도리를 알아야
비로소 성인(成人)이 되는데 둘아닌 도리를 확연히 꿰뚫었 을 때
나툼의 도리를 알게 됩니다.
 

돼지가 원하면 돼지가 되어주고 뱀이 원하면 뱀이 되어주고,
그래야만 보살로서 걸림없는 경지에 이르게 됩니다.


그쯤은 되어야 광대무변한 법을 가로 세로로 꿴다고 하지요.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있어야 자유자재하다 할 수 있습니다.
자유자재란 무엇으로부터의 자유자재가 아닌 까닭이지요.

하지만요,
내가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보겠다느니
보았느니 듣겠다느니 듣느니 해서는 안됩니다.
 

책을 보고 통했다해도 물컵 속의 물 한 방울도 스스로 마 실 수 없습니다.
그러니 말도 필요없고 이론도 필요없습니다.


오직 수행을 통해 어른이 되어야 하고 생사조차도 없는 늙은이가 되어야 합니다.
생사에 끄달리지 않는다가 아니라 생사조차 없다는 경지가 되어야지요.
귀머거리에서 벗어나고 장님에서 벗어나는 공부가 바로 부처님법의 공부입니다. 
 

 

질문자:

 

스님께서는 늘 마음공부를 통해 자유인이 되라고 하십니다.
자유인이란 어떤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까?

 

 

대행스님:

 

해탈의 경지를 어찌 말로 이르리까.
그러나 이왕 물으셨으니 한마디 하지요.


중생이 늘 보고 듣고 겪으며 살아가는 이 유위법의 세계와
중생에게는 보이지 않는 무위법의 세계를 다 보는 경지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아하! 차원이 다른 또하나의 세계가 있나보구나

 

하는 식으로 생각을 해서는 안됩니다.
두 세계를 다 본다함은 하나를 본다, 하나로 본다는 뜻입니다. 


흔히들 이 공부를 하면 남다른 신통력이 생긴다고 아는데
하나인 경지에서는 신통도 도가 아닙니다.
다 내살림이니 거슬리고 부딪히고 뛰어나고 훌륭하다 할 게 어디 있겠습니까?
그냥 여여한 것이지요.
그래서 찰나찰나 다가오는 모든 세상일과 하나인 채로
저 말없이 흐르는 강물처럼 도도하게 흘러가는 삶 그 자체가 되는 것이지요. 


자유인이라 함은
내가 내 마음대로 먹고 싶으면 먹고 자고 싶으면 자듯이
전체가 내 살림이니 거칠게 없다는 말입니다.
생각해보세요.
'나'라고 내세울 게 없다면 무엇이 불편하겠습니까?
부처님께서는 제법무아 라고 하셨습니다.


어떤 경계에서도 '나'라는 관념이 없으니 그냥 전체요 하나인 것입니다.
그래서 자유인이라 합니다.
자유인이면 새삼 자유다 라고 말할 것도 없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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