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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염불기도 /대행스님

[대행스님]어느 순간을 '나'라고 할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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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자:

 

스님께서는 주인공을 믿고 거기에 일체를 맡기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주인공 당신만이…'라고 하게되면

주인공이라는 대상이 있어서 거기에 맡기는 결과가 됩니다.

주인공을 생각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주인공을 대상화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잘못하는게 아닐까요?

 

 

 

대행스님:


제 말을 잘 알아 들으셔야 합니다.

내가 '주인공'을 말하고 주인공에 맡기는 도리를 얘기해 주니까

어떤 스님은 당신의 책에다가 '타종교에서 말하는

절대신과 무엇이 다르냐?'고 썼다는데 아마 적지아니 오해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질문하신 분께서도 그와 비슷한 생각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주인공은 결코 대상이 아닙니다.

주인공을 대상인듯 오해하게 되는 경우는 백이면 백

주인공을 바라보는 주체가 따로 있다는 생각을 떨쳐버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따로 선 내가 있으니까 주인공이 대상처럼 여겨지겠지요.

 

그러나 본래 나는 空입니다.

누구나 미생물에서부터 수억겁을 돌고 돌아 오 늘에 이르렀는데

그럼 어느 때의 모습이 진정 '나'일까요.

그리고 그렇게 돌고 돌아 지금에 이른 이 모습을 '나'라고 한다면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요?

또 '나'라고 하는 그놈은 도대체 실체가 무엇일까요? 또 있습니까?

찰나찰나 고정됨이 없이 돌고 도는데

어느 순간을 '나'라고 할 것이며,

가령 한 순간을 집어서 그때의 '나'를 나의 실체라 한다면

그 찰나 전이나 찰나 후 의 모습은 또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누차에 걸쳐 말하지만

우리가 '나'라고 딱 못박아 생각하는 그 '나'는 결코 진정한 '나'가 아닙니다.

그런 '나'는 없습니다.

그리고 그 '나'라는 의식은 죽어야 합니다.

 

그래서 내가 주인공을 상정해 놓고 '네가 형성시켰고 끌고가고 있으니

네가 알아서 해결하라'고 일러주는 것은

여러분들이 마치 실체가 있는양 착각하 는 그 '나'를 죽이라는 뜻입니다.

 

본래 없는 '나'이니 죽일 것도 없지만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으니 그 생각부터 죽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나'가 쑥 빠진 주인공에 맡기는 작업을 함으로써 참 나를 만날 수 있습니다.

 

나는 본래 없고 주인공이 있다,

밖으로 찾는게 아니라 일단 안으로 되돌려라,

 

그렇게 해서 그 딱딱한 통속의 '나'가 죽는 도리를 일러주고자 '주인공' 을 말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주인공은 개별적인 주인공이 아니라 전체로서 의 주인공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주인공을 또 어떤 실체로 관념화 할까 싶어

공(公)이 아닌 공(空)이라 했습니다.

 

안으로 관하는 길에서는 주인공만 남고 나, 상대는 자연히 사라집니다.

참 나 가 드러날 때 주인공도 방편이요 이름인줄 알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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